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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복음 1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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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복음 1
십자가의 복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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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특집-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 –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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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TV / 시리즈설교 / 십자가의복음 / 십자가의복음(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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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복음 1
저자는 미 캘리포니아 침례대학을 졸업하고, 미 싸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침례신학대학 강사, 수도침례신학대학 강사를 역임했고, 하늘빛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현재 포도나무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새물결선교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다가오는 하나님의 군대』『새부대의 교회를 위한 다섯 기둥』『십자가의 …
저자는 미 캘리포니아 침례대학을 졸업하고, 미 싸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침례신학대학 강사, 수도침례신학대학 강사를 역임했고, 하늘빛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현재 포도나무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새물결선교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다가오는 하나님의 군대』『새부대의 교회를 위한 다섯 기둥』『십자가의 복음』『성령사역의 회복』『영적 분별력』『예배 회복』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영적 전쟁』『치유의 권세』 등이 있다.
고난주간 특집-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고난이 끝이 아니라 지상사역의 목표이자 면류관이라고 생각했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이런 신앙 이해에 도달했는가? 고난 주간을 맞아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예수 자신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를 통해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살펴본다.
예수께서 왜 십자가 처형을 받으셨는가?
예수의 고난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수난과정을 내포하지만 그 극치는 아무래도 십자가 사건에서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태가 지적한대로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마 26:21)였다. 무슨 이유로?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도 있다. 유대와 같은 로마 식민지에서 이런 종류의 처형은 지역 로마 총독의 명령으로만 수행될 수 있었다. 더욱이 십자가 형은 치안을 교란시키는 반란자들에게 내려지는 것이 상례였기에 예수께서도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반란자의 죄목으로 처형당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도 있다. 누가복음의 한 구절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무리가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눅23:2-5). 빌라도는 이런 비난을 받고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마27:11 막15:2 눅23:3 요18:33)고 물었다. 궁극적으로 예수는 두 다른 반란자들과 더불어 처형되었고 십자가 형틀에 붙인 비문도 이러한 국가반란죄와 연관되어 있었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예수는 치안교란죄로 처형당한 것이 된다. 하지만 심문을 받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국가 반란을 주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마26:55 막14:48 눅22:52). 더욱이 예수의 추종자들도 국가 반란에 가담한 죄에 연루되어 함께 처형되지도 않았다. 빌라도도 예수에게 (치안교란죄와 같은) 『죄가 없다』고 시인하였다(눅23:4).
예수의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을 「성전청결 사건」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마21:12-13 막11:15-17 눅19:45-46). 사실 예수의 행동은 성전을 개혁하고자 하는 개혁운동이라기보다는 성전파괴를 예고하는 행동이며 유대 종교체제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도전적 행위였다. 성전청결이라는 공개적 행위가 있자마자 그를 죽이려는 결정적인 음모가 꾸며지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그러한 선포는 다윗왕국 건설에 대한 백성들의 대중적 소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에, 성전을 대항하는 예수의 공개적 행동은 로마 사람들에게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식의 해석은 예수의 수난과정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역할과 그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했던 유대 군중의 역할을 무시한 것이다. 예수와 종교지도자들 간의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이고 마가복음에 따르면 그를 죽이고자 하는 음모는 예수의 사역 초반부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막3:6). 따라서 예수의 공개적인 성전청결 행위는 이러한 갈등과정을 절정에 끌어올린 촉매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치안교란죄로 일단 예수를 빌라도 총독에게 넘겼으나 죽일 죄를 찾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산헤드린이 예수의 문제로 비공식 모임을 가져 그를 죽일 음모를 꾸몄으나 로마 당국의 비판이 두려워서 치안교란죄 뿐만 아니라 이에 덧붙여 성전 모독죄란 종교적 죄목 하나를 더 추가하여 빌라도 총독에게 다시 넘긴 것으로 보인다(요11:48). 하지만 복음서 보도에 따르면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도 증인들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또한 증인들까지 매수한 흔적이 역력하다. 복음서 기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거짓 증언이라 못박고 있다(막14:55-59).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총독과 유대 종교지도자들 간의 정치적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진 부분이 존재한다. 예수를 추종하는 수많은 군중들의 무리가 없었더라면 예수는 로마 당국이나 종교지도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의 도래를 선포하는 예수의 왕국 설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대망했던 유대 군중들의 소망을 자극하여 수많은 군중들의 추종을 만들어냈고 이것은 로마 당국자들 뿐만 아니라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잠정적인 엄청난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예수의 왕국 설교는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없었지만 현체제를 고수하려는 기득권자들 모두에게 정치적인 위협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유월절 동안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의 공개적 설교와 행동으로 인해 고조된 이 위협은 결국 그의 체포와 처형을 야기하고 말았다. 결국 예수께서는 현 질서를 고수하려는 당시 종교, 정치 기득권자들의 이해에 따라 희생이 되셨다고 할 수 있다.
십자가 고난에 대한 예수의 이해
예수는 당대의 사회, 정치, 종교적 구조의 관점에서 무죄한 희생양으로 돌아가신 것은 분명하지만, 초대교회는 그것을 우연한 사건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죽이기는 사람들이 죽였지만 사실은 인류 구속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는 데 「넘기우신」 사건이라 할 수 있다(롬8:3). 예수의 죽음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의가 계시된 사건이다(롬5:6-8 고전1:18-2:5). 초대교회가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 뿌리와 기원은 물론 예수 자신이다. 하지만 로마제국 당시 지녔던 십자가 처형의 잔인성과 치욕적 성격 때문에 초대교회는 외부로부터 자연히 조롱과 공격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기독교회 내부에서조차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혼란과 당혹감이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신명기(21:22-23)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이다』고 말했다. 기독교 이전 시기에 이미 십자가에 못박힌 자가 하나님께 저주받은 인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주는 얼마간의 중간사 시대의 문헌적 증거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생각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은 예수를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기독교 메시지 자체를 모순된 주장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초대교회의 설교 가운데 자주 신명기 21장23절이 암시된다(행5:30 10:39 13:29 갈3:13 벧전2: 24). 이것은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신명기의 이 구절에 근거해서 예수를 메시야로 선포하는 기독교 메시지에 반대하고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음을 역으로 시사해 준다. 기독교인들이 신명기 구절을 주도적으로 예수의 죽음에 적용하였다기 보다는 유대인들이 기독교회를 공격하는 근거 구절로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사실 바울도 십자가의 복음이 헬라 세계 속에서 「거리낌」과 「거침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전1:23 갈5:11). 십자가는 당대 헬라 세계 속에서 부끄러움과 굴욕의 상징이었고, 심지어 기독교 복음 전파자들 가운데도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롬1:16 딤후1:8).
이렇게 부끄러움과 거리낌의 대상이었던 십자가가 어떻게 초대교회에서 인류를 위한 구원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었을까? 뿌리를 찾다보면 우리는 그러한 이해의 근원을 예수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사역 중반부터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여러차례 예고하셨다고 기록한다(막8:31 9:31 10:33,34). 자신의 죽음의 의미에 대해 밝힌 곳은 많지는 않지만 가장 대표적인 복음서 구절은 마가복음 10장45절과 마태복음 20정28절이다. 이 구절은 이사야 53장의 「고난당하는 여호와의 종」 사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 분명하다. 이 구절은 예수의 죽음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준 대속적 죽음으로 말한다(딤전2:5-6). 성찬식 말씀에서도 제자들에게 주어진 떡을 가리켜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으로 말씀하셨고 그의 죽음의 피를 상징하는 잔도 제자들을 위해 붓는 새 언약 의식으로 설명하셨다(눅22:19-20 막14:25). 최후의 만찬은 출애굽 구원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 식사를 배경으로 하는데 후자는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최후만찬의 신학적 의미를 풀어주는 열쇠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최후만찬은 장차 도래할 구원시대의 잔치를 예표하는 의미도 지녔다. 특별히 유월절 예루살렘에 도착하셔서 행하신 성전청결 사건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롭게 형성될 부활공동체, 즉 신약교회의 형성을 예시하는 예표적 사건이었다. 손으로 지은 현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질 때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새로운 성전』 곧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실 것이다(막14:58 요2:19). 예수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결국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되었지만 이제 새 언약 시대에 새롭게 지어질 새 언약 공동체, 즉 신약의 교회는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어 믿는 자들이 서로 엮어져서 연결될 새 성전, 새로운 하나님의 처소가 될 것이다(막12:10). 결국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새로운 하나님 백성을 창조한 교회론적 사건으로, 인류 구속을 위한 대속적, 희생적 죽음으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초대교회의 이해들
십자가 고난과 죽음에 대한 예수 자신의 이해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의 근거가 되었으며 사도들의 신학의 근간이 되었다(고전15:1-5). 특히 바울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한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 백성의 속죄를 이룬 유월절 양의 희생제사였으며(고전5:7), 그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고(갈3:13), 아들의 명분을 부여해 준 구원론적 사건이었다(갈4:5). 그것은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기 위해 그들의 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준 사건이었다(갈1:4).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죽음은 신자가 믿을 때 그의 십자가의 죽음에 참여하는 실존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세례받을 때 그와 함께 장사지낸 바 되었으며(롬6:4)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갈2:20). 특별히 신자를 주어로 삼아 「십자가에 못박다」는 능동태 동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 십자가 사건은 예수의 구속적 죽음에만 해당되는 것이 통례인데, 바울은 이 통례를 깨고 기독교인들 자신이 믿을 때 자신 속의 죄성 즉 「육(肉, 싸륵스)」을 못박았다고 선언한다. 십자가 사건은 여기서 기독교인의 윤리적 삶의 기초와 출발점이 된다. 그것은 옛 사람과 그 죽은 행실들을 처리한 사건이며, 이 구원론적 사건에 기초해서 신자는 여전히 자신의 육과 정욕을 「죽여야(put to death)」 한다(롬8:13). 여기에 이미 완성된 것(already)과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not yet) 사이에 독특한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 이미 완성된 측면만을 강조하게 되면 죄 문제는 이미 다 끝난 것이 되고 구원도 이미 완성된 것처럼 되며, 따라서 날마다 죄와 싸우고 회개할 필요도 없어지게 된다. 한국교회 내에 이런 잘못된 신학사상이 엄연히 존재한다. 반면에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래의 측면만을 강조하게 되면 기독교인의 삶과 윤리의 안정성을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있고 또다른 행위구원론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신약 저자들은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니(not yet)」, 이 두 측면들을 모두 균형있게 붙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에 못박혀야 할 대상은 옛 사람, 정욕 또는 육체 뿐만 아니다. 신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갈2:19). 율법에 대한 죽음은 곧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 있는 길로 설명된다(19절). 율법이 주인처럼 군림하던 때가 끝나고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 아래서 사는 때가 도래하였다(20절). 더욱이 신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갈6:14). 이 말의 의미는 다음 15절에서 부연 설명된다. 옛 세상의 질서는 할례와 무할례, 즉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가치관에 묶여 있었다. 십자가 사건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노예냐 주인이냐, 남자냐 여자냐 하는 옛 세상의 구분 방식들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옛 가치체계에 종말을 고한 사건인 것이다(갈3:28).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허물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인류로 만든 교회론적인 사건이었다(엡2:11-18).’EN’이제 십자가는 서로 다른 문화적, 사회적, 인종적, 성적 배경의 차이점들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창조하였다(엡2:15).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교회의 존립 근거이며 통일성의 기반이다. 그렇다면 십자가 복음은 단지 구원론적 의의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계층과 인종적 차이, 신분적 차별을 뛰어넘어 모든 신자를 평등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사회변혁적 의의도 지닌다고 하겠다. 복음주의 교회가 이 후자의 의미를 소홀히하는 것은 약점 가운데 하나이다. 복음은 사회 변화의 지향성을 지녀야 한다.
바울은 선교 과정에서 당하는 고난들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부르기도 한다(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은 단번에 끝난 사건이지만, 바울과 같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당하는 고난 역시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불리운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바울의 함축된 의미는 그보다 폭넓다. 그는 복음 선교사로서 당하는 고난들을 설명하면서 『항상 예수의 죽인 것을 몸에 질머지고』 다닌다고까지 말한다(고후4:10). 물론 바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처럼 구속적인 의미를 지닌다기보다 선교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수께서 고난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생명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선교사들 역시 그들의 고난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생명을 준다. 때문에 선교적인 의미에서 선교사들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다. 공관복음에서처럼 참된 예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처럼(막8:34),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은 제자들의 사역의 일부이며 교회의 참된 종들인 것을 확증해 주는 징표이다(고후11:23). 고난은 또한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빌3:10).
결론적으로 예수의 고난과 그의 십자가 죽음은 초대교회에서 다양하게 이해되고 해석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적인 죽음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괄한 범세계적인 믿음의 공동체를 창조한 교회론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복음 선교를 통해 여전히 참여되어야 할 실재이며 매일의 삶 속에서 좇아야 한 본보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십자가 복음은 교회의 통일성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계층의 차별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자매로 변화시키는 사회변혁적 성격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와 주인, 남자와 여자 등 고대사회에서 뛰어넘을 수 없었던 신분적 차별들을 무너뜨리고 그들 모두를 평등한 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시킨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그것은 또한 제자된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자기부정과 섬김의 정신이기 하다. 이 십자가 복음의 정신을 특별히 한국교회는 실천해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한수 교수(총신대학원 신약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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